阅读:韩国经济结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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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下长文高度概括了韩国的经济结构,是大致了解各个产业的好文

​산업구조의 변화 产业机构的变化

일제강점기 때 최초로 식민지 경제침탈이라는 목적하에서 근대적 공업생산이 이루어졌으나, 공업시설들은 6·25전쟁으로 크게 파괴되었다. 전후 복구를 통해 산업은 점차 재건되기 시작하였고, 특히 1962년 정부 주도하에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실시되면서 고도의 경제성장과 함께 공업 중심으로 산업구조의 재편이 이루어졌다.

취업인구는 1949년 1차·2차·3차산업에 각각 79.9%, 3.7%, 16.4%가 종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공업화가 진전된 1980년대에 들어오면서개 군2차산업 비중이 22.4%로 늘어나고, 3차산업도 43.4%로 되어 34.0%의 1차산업 취업인구를 압도하게 되었다. 1992년 현재 구성비는 1차·2차·3차산업이 각각 16.0%, 25.5%, 58.5%로 나타나고 있다.

산업구조의 변화는 국민총생산의 구성비에도 반영되었다. 1961년 1차산업이 전체 국민소득에서 38.7%를 차지하였다. 제4차 경제개발계획이 끝난 1982년 18.2%로 급격히 저하된 반면, 2차와 3차산업은 1961년 15.4%와 45.9%에서 1982년 35.4%와 46.6%로 각각 증대되었다.

1992년 1차·2차·3차산업은 각각 7.6%, 27.6%, 64.8%를 기록해 3차산업의 상대적 비중이 증가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계속 진행되어 1996년 현재 각 산업의 비중은 11.6%, 22.6%, 65.8%로 변모하였다.

농업 农业

공업화가 전개되면서 농업의 위치는 계속 저하되어 왔다. 농촌인구는 농산품 교역조건이 악화되고 농가소득이 감소됨에 따라 인구유출이 가속화되었다.

한국의 농업인구는 1960년 약 1500만 명에서 1981년 약1000만 명, 1992년 약 570만 명, 1996년에는 460만 명으로 격감하였다. 반면 농업인구 감소에도 불구하고 농가당 경지규모는 1962년 0.8ha에서 1992년대에는 1.26ha로밖에 늘지 않았다. 이는 한국의 농업생산이 여전히 영세 소농에 머물고 있음을 말하여 주는 것이다.

농업문제에 대해 정부는 신품종 개발과 보급, 토지개량과 비료사용, 기계화 등 농업생산기술의 개혁을 꾀하는 동시에 이중곡가제를 실시하여, 농가교역조건을 개선하고자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업화의 진전에 따라 농업과 공업 간의 격차는 점차 확대되는 경향이 있다.

한편 소득증가에 의해 식량 소비형태가 변화함에 따라 한국농업은 자급자족적인 생산에서 시장판매를 위한 채소·과일 및 낙농제품 등 비곡물 농산품의 생산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축산업 畜牧业

국민소득 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축산물의 수요도 크게 증대되어, 축산업은 1970년대 이후로 기업화·대형화되고 있다. 농가에서는 주로 소·돼지·닭이 사육되고, 1970년대 이후로는 낙농사업이 활기를 띠고 있다. 1980년대에 들어서는 수급의 불균형으로 인해 심한 가격변동과 과다한 수입 등의 문제가 나타나기도 하였다.

축산업은 1980년대 이후부터 몰아 닥친 농·축산물 개방 조치로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결과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로 들어간 1997년 7월부터 돼지고기와 닭고기의 수입이 자유화되었고, 2001년 1월부터는 쇠고기 수입자유화가 진행될 예정이다.

임업 林业

일제강점기 때의 군용목재 확보를 위한 무분별한 벌채와 6·25전쟁으로 인한 재화 등으로 한국의 산림은 매우 황폐해졌다. 정부는 1961년 「산림보호법」을 제정하였으며, 1972년 제1차 치산녹화10개년계획, 1979년에 제2차 치산녹화10개년계획을 실시한 바 있다.

4년 앞당겨 완수한 1차 계획에서는 산림녹화에 치중하고 국민계도를 위주로 하는 정책을 실시하였으나, 2차 계획에서는 임업의 경제성과 공공성을 중시하여 국내산업발달에 부응하는 산지의 자원화를 도모하였다.

1992년 현재 조림면적은 646만 7655ha, 임목축적은 ha당 40㎡로서 임업선진국에 비하면 아직도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1996년의 임업생산 부가가치액은 국민총생산 272조 원의 0.2%인 5434억 원 정도에 머물고 있다.

수산업 水产业

수산업은 영세성과 낙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가, 1958년 원양어업이 본격화되면서 어선의 대형화·동력화와 함께 점차 발전하게 되었다. 1992년 수산물 생산량은 원양어업 100만t을 포함, 총 324만t으로 세계9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수출액은 16억 달러에 달하여 세계7위 수준이다. 1996년 현재 어업인구는 약 17만 명 정도이다.

1997년 통계에 의하면, 우리 어업은 연근해 어업이 약 100만t, 천해양식업이 약 70만t, 원양어업이 약 56만t, 내수면 어업이 약 2만 2000t 정도로 여전히 연근해 어업이 주류이다.

광업 矿业

한국에는 백금과 석유를 제외한 각종 지하자원이 다양하게 매장되어 있으나, 주요 지하자원의 대부분은 북한에 편중되어 있다. 남한에서는 1962년 이후 경제개발계획이 추진되면서 공업화에 필요한 석탄 등을 중심으로 광업개발이 추진되기 시작하였다.

무연탄은 1980년대 중반에 총 에너지소비의 20% 이상을 차지하였으나 환경규제와 고급에너지 선호경향으로 1992년에는 5.2% 수준으로 낮아졌다.

제조업 制造业

6·25전쟁 후 산업의 재건과 1960년대 이후 고도의 경제성장은 제조업의 급속한 발달을 토대로 이루어졌다. 1950년대에는 미국의 원조물자를 가공하는 소비재공업이 성장하였으며, 1960년대에는 경제개발계획과 차관도입에 의해 공업발전을 꾀하였다. 그리하여 1962년부터 공업생산은 급속히 증대되어 20년 후인 1982년에는 약 16.1배로 생산이 늘어났다.

1960년대에는 국내의 풍부한 노동력을 이용한 최종소비재 중심의 경공업이 성장하였고, 1970년대에는 중화학공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하였다. 1965년에서 1980년까지 전체 제조업생산에 대한 중화학공업의 비중은 34.2%에서 53.2%로 증대되었고, 수출에 있어서도 15.3%에서 47.6%로 그 비중이 늘어났다.

그러나 과도한 중공업화의 문제점이 나타나 1980년대에는 산업간 및 동일 부문 내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새로운 산업정책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한국제조업의 급속한 성장에서 몇 가지 특징적인 면모가 형성되었다. 첫째, 부족한 자본과 원자재를 외국으로부터 도입하고 국내의 풍부한 노동력을 활용하여 공업화를 추진하면서 수출확대를 공업성장의 원동력으로 삼았다. 이러한 수출지향적 생산구조는 생산증대를 위한 원자재와 생산재를 계속 수입해야 하는 수입유발적 성격을 띠게 되어, 수입대체적 공업화도 병행하게 되었다.

둘째, 대기업을 중심으로 공업생산의 증대를 추구한 결과 중소기업이 상대적으로 침체되었고, 따라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 불균형한 이중구조가 형성되었다.

서비스업 服务业

한국의 산업구조에서 서비스산업은 8·15광복 후 꾸준히 높은 비중을 차지하여 왔다. 미국의 원조가 제공되던 시기에는 물자배분과정에서 유통 부분이 기형적으로 확대되었으며, 1962년 이후 경제개발이 추진되고 급속한 공업화가 이루어지면서도 서비스산업은 꾸준한 증가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국민총생산에서 서비스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965년 42.5%에서 1980년 55.4%, 1992년에는 64.8%에 이르게 되었으며, 이는 공업화와 관련된 사회간접자본·건설업·부동산업·금융업의 성장 등에 기인한 것이다. 서비스산업은 부가가치생산에서보다 취업인구 구성면에서 더 높은 비율로 성장하였는데 이는 신규노동력을 흡수하는 고용창출효과가 컸음을 보여준다.

서비스업은 최근 계속해서 GDP 성장률을 상회하는 수준에서 성장률이 이루어지고 있고, 고용창출에서도 현격한 성장을 보이고 있다.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에서도 계속적인 부가가치 창출 산업으로 지원, 육성하고 있다.

1998년 현재 IMF관리체제하에서 금융·보험·통신·부동산·항공과 개인 서비스 분야(의료·법률 등) 등의 각종 서비스산업 분야에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개방정책이 행하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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